마을의 전설과 유래

쉽고 간편하게 이용하는 민원서비스

  • 마을나들이
  • 마을의 전설과 유래
  • 글자크기 크게조정
  • 글자크기 작게조정
  • 본문인쇄 새창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가송리

  • 가송리는 풍수적으로 천옥(天獄)이라 불리울 만큼 매우 폐쇄적인 지형세를 띄고 있는 마을로 청송 주왕산(周王山)과 더불어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일컬어지는 청량산(淸凉山) 줄기가 마을을 에워싸고, 한복판으로는 낙동강의 원줄기가 흘러간다. 특히 청량산의 대(臺) 밑에 형성된 가송협(佳松峽)은 안동 땅의 수많은 경승 가운데서 산수미(山水美)의 첫째를 꼽을 만큼 안동산수의 압권이라 일컬을 만하다. 마을은 강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가사리, 서쪽에 소두들, 그리고 소두들에서 남서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올미재가 있다. 가송리는 구한말 예안군 의동면에 속한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사리, 송오리, 고리, 광석동 일부, 운천동 일부와 봉화군 하남면의 여을며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사리와 송오리의 이름을 따서 가송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가송리는 현재 고리재, 소두들, 가사리, 올미재 마을 등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구수는 70여 호가 살고 있다.

단천리

  • 단천리는 구한말 예안군 의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면천리, 백운리, 항곡리, 단사리, 원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단사와 면천의 이름을 따서 단천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의 일부가 수몰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이 마을은 단사, 항곡, 백운지, 면천 등 4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되었으며 가구수는 30여 호가 살고 있다

동부리

  • 동부리는 구한말 예안군 읍내면에 속한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촌동, 관저동, 교촌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예안읍의 동쪽이 되므로 동부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그후 1974년에 안동댐이 건설됨에 따라 일부가 수몰되고 나머지 일부는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동부리는 새터, 괴네, 송티, 월천 마을로 구성되며 현재 가구수는 40여 호가 살고 있다

분천리

  • 분천리는 구한말 예안군 의동면 지역으로서 부내, 또는 분천(汾川), 분강촌(汾江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분천동(리)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부내는 원래 영천 이씨(永川李氏)의 집성촌으로, 입향 시조는 고려말엽에 군기시소윤(軍器寺小尹)을 지낸 이헌(李軒) 공이다. 공은 어지러워 가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천(지금의 영주)을 떠나, 천석(泉石)이 아름다운 분강(汾江) 굽이에 안주(安住)의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소윤공(少尹公)이 동네를 둘러보니 낙동강 물이 맑게 흐르므로 부내라 불렀다고 하며, 한자로는 분천(汾川)이라 한다. 이 마을은 소윤공이 약 600년 전에 입향한 이후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물이 대를 이어 배출된 유서 깊은 마을이었으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구가 되어 현재 송티와 넘티 등 2개의 마을만 남아있으며 가구수는 20여 호가 살고 있다.

서부리

  • 서부리는 원래 예안군 읍내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저동, 교촌동, 만촌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예안읍의 서쪽이 되므로 서부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일부가 수몰되고, 나머지 일부는 그 이듬해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서부리는 현재 서부1리, 서부2리로 나눠지며 가구수는 00여 호가 살고 있다.

선양리

  • 선양리는 구한말 예안군 읍내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안동, 무양동, 교촌동, 천전동의 각 일부와 서면의 구송동 일부를 병합하여 선안과 무양의 이름을 따서 선양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의 일부가 수몰되고, 나머지 일부는 그 이듬해 도산면에 편입되었는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선양리에는 독작골, 송라, 뒷송, 영양계 마을 등이 포함되며, 가구수는 30여 호가 살고 있다.

온혜리

  • 온혜리는 안동에서 북쪽으로 청량산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따라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동네로 예부터 온천(溫泉)이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하는 뜻으로 온혜(溫惠)라 하였다한다. 온혜는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한 대유학자(大儒學者)로 후세의 추앙을 받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으로 구한말에는 예안군 의서면에 속했으며, 1914년에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곡리, 고산리를 병합하여 온혜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는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온혜 1리와 온혜 2리, 온혜 3리로 나누어지며, 가구수가 190여 호가 살고 있다. 논실, 건지골, 동작골, 고산, 삐끼실은 온혜 1리에 속하고, 중마, 합강, 청계 마을은 온혜 2리에, 그리고 배미골과 평지, 상촌은 온혜 3리에 속한다. 마을 앞에는 온혜천(溫惠川)이 흐르는데 이 물은 도산면 용두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흘러 온혜에 이르는데, 온천이 있어서 겨울에도 얼지 않으므로 온계(溫溪)라고도 부른다. 이 물은 북쪽에서 오는 태자리의 물을 합하여 큰 내를 이루어 꺾이어 동남쪽으로 흘러 토계리에 이르러 퇴계(退溪)가 되고, 토계리의 남쪽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운곡리

  • 운곡리는 원래 예안군 의서면의 지역으로서 구레실, 또는 운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갈곡, 도곡, 황정을 병합하여 운곡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도산면 서북쪽에 위치하는 해발 661m의 용두산(龍頭山) 서쪽 지맥으로 도산면 온계에서 수백 보 거리에 솟은 해발 480m의 국망봉(國望峯)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용두산에서 발원하는 상계천(上溪川)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도곡, 구래실, 황정, 갈골, 서암 등의 작은 마을들이 그 주변 산간지대에 옹기종기 모여있으며 가구수는 30여 호가 살고 있다.

원천리

  • 원천리는 1895년(고종 32)년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예안군 의동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촌동, 천곡동, 이곡리를 병합하여 원촌과 천곡의 이름을 따서 원천동(리)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일부 마을이 수몰지구가 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원천리에는 원원천 마을인 원촌 마을과 내살미 마을이 있으며 가구수는 50여 호가 살고 있다.

의일리

  • 의일리는 구한말 예안군 의서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을리, 북평리, 연곡리, 효잠리, 매정리와 읍내면의 교초리 일부리 병합하여 의서면의 첫 동리라는 뜻으로 의일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의일리는 현재 의일1리와 2리로 나누어 의일1리는 효잠, 웃제비실, 아랫제비실 등의 마을이 포함되고, 의일2리는 매정, 안을리, 뒤뜰, 방아골 등의 마을이 포함되며, 가구수는 70여 호가 살고 있다

의촌리

  • 의촌리는 1895년(고종 32)년 지방관제 개편에 의해 예안군(禮安郡) 의동면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에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의인리와 섬촌을 병합하여 의촌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선성지를 보면 의인(宜仁)은 '현 동쪽 9리에 있으며 고려 공민왕이 승격시켜 현으로 만들어 지금의 명칭으로 고치고 안동에 복속시켰으며 공양왕때 다시 예안현에 복속 되었다고 하였다.'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됨에 따라 수몰 지구가 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되고 의인 마을과 섬촌 마을에 가구수는 20여 호가 살고 있다.

태자리

  • 태자리는 원래 봉화군 하남면의 지역으로서 태자산(太子山; 도 산천)이 있어서 태자산, 태자산리 또는 줄여서 태산, 자산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하곡, 반정리, 여울며리와 예안군 의동면의 가송동 일부와 의서면 고산의 일부를 병합하여 태자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태자리는 태자 1리와 태자 2리로 구분하는데 태자 1리에 지경, 널매, 고리재 마을이 있고, 태자 2리에 장선, 소정, 원태자, 머골, 다랫재 마을이 있다. 가구수는 120여 호가 살고 있다.

토계리

  • 토계리는 구한말에 예안군 의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평, 상계, 하계, 계남, 섬촌 일부와 의서면의 온혜동 일부를 병합하여 토계동(리)라 하여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됨에 따라 수몰지구가 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태백산(太白山)의 지맥인 용두산(龍頭山)과 도산면 태자리에서 근원하여 온혜(溫惠)를 거쳐 흐르는 냇물이 상계(上溪) 마을의 퇴계종택 앞을 지나 낙동강에 흘러드는데, 종택 앞으로 흘러가는 냇물을 퇴계(退溪)라 한다. 원래 냇물의 이름은 토계(兎溪)였으나 명종 원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이 냇가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菴)을 짓고, 냇물의 이름을 퇴계(退溪)로 고친 후 선생의 아호(雅號)로 삼았는데, 후에 토(兎)자를 음(音)이 같은 토(土)자로 고쳐 마을 이름을 토계(土溪)로 불렀다고 한다. 토계 마을은 원래 퇴계천의 상류에 위치한 상계와 그 하류인 하계(下溪), 퇴계천 건너 남쪽에 자리 잡은 계남(溪南), 하계를 지나 고개 너머에 있는 원촌(遠村) 등의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마을이 재편되어 지금은 양평, 상계, 하계가 토계리에 속해 있으며, 계남 마을은 완전히 수몰되었으며, 원촌 마을은 도산면 원천리(遠川里)에 편입되었다. 현재 토계리는 2개 반으로 나누어지며 가구수는 50여 호가 살고 있다.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