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人

안동인물

  • 안동人
  • 안동인물
고려 건국에 빛나는 안동의 삼태사
  • 김선평
  • 권행
  • 장길(장정필)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길(장정필))의 기본정보
1. 김선평(金宣平)
기본정보
1) 생몰년도 : 미상
2) 본관 : 안동(安東) 3) 주요년보 : 930년(태조 13년) -권행, 장길(장정필) 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병산전투에서 전공을 올림
1-1. 김선평의 생애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길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 되고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지고 안동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2. 권행(權行) 기본정보
1) 생몰년도 : 미상
2) 본관 : 안동(安東)
3) 주요년보 : 930년(태조 13년) -김선평, 장길 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병산전투에서 전공을 올림.
2-1. 권행의 생애
≪고려사≫ 태조세가에는 행(行)이라 하였다. 본성은 김(金)이라고 한다. 신라 고창(현 안동)의 수령으로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비빈(妃嬪)을 능욕하며 장안을 분탕한 데 몹시 분개하여 성주 김선평, 장길과 함께 ˝견훤은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이니 왕건(王建)에게 귀순하여 우리 원수를 씻어야 하리라˝하고 고려에 항복하였다. 930년(태조 13) 왕건과 견훤의 격전지인 병산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 전공으로 인해 고려 태조가 ˝상황을 바로 살펴 권도(權道)를 잘 취했다˝하여 권(權)으로 새로이 성(姓)을 주고 안동을 본으로 삼게 하였으며, 대상(大相)이라는 관계(官階)를 내려주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인다.
3. 장길 기본정보
1) 호/이름 : 포음(圃陰)/길(吉)
2) 생몰년도 : 신라 진성왕 2년(888) ~ 고려 경종 3년(980)
3) 본관 : 안동(安東)
4) 주요년보
장길 연보
년도 내용
888년(1세)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장군인 장원의 아들로 태어남.
892년(5세)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망명함.
905년(18세) 중국으로 파견하는 정조사를 따라 다시 중국에 들어감.
911년(24세) 중국에서 문과에 장원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함.
930년(43세) 김선평, 권행 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병산전투에서 전공을 올림.
980년(91세) 안동에서 사망함.
3-1. 장길의 생애
장길은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장군인 장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5세 되던 892년(신라 진성여왕 4년) 나라 정치가 문란하자 아버지를 따라 신라에 망명하였다. 강릉에 살다가 경북 노전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그후 18세 때에 중국으로 파견하는 정조사를 따라 다시 중국에 들어가 24세 때에 문과에 장원 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제자를 가르쳤다.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명성이 천자에게 까지 알려져서 한때 벼슬이 이부상서에 까지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와 경북 인동 노전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930년(경순왕 4년)에 김선평, 권행과 함께 향병을 모아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대상(大相)이라는 관계와 안동을 본으로 하사받고 안동장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후 다시 인동(仁同)에 물러가 강학 하다가 만년에 안동으로 옮겨 경종3년에 몰하니 향년 91세였다. 안동부(安東府)의 백성들이 그 공덕을 추모하여 성종2년 사당을 세워 삼태사(三太師)를 함께 제사한다. 세조3년 이대사성의 상소로 왕명으로 노전(盧田:仁同)에서 서원을 세우고 사액하였으며, 동 2년 부원군(府院君)에 추증되었다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