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
- 안동生
- 복식
상례란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절차와 예법을 말한다. 망자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므로, 가족제도, 종교, 신앙 등 당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이 상례의 유형과 의식 절차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종교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상례문화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의 상례 역시 종교의 이념과 의식체계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이며 시대별로 변화해왔다.
고려 말에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불교의식으로 진행되던 상례에도 차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진유학자들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3년 간 상복을 입을 것과 가묘를 세워 제사를 받들 것을 주장하면서 유교식 상·장례가 보급된 것이다.
고려 공양왕 1년에는 화장 금지에 대한 상소가 올라오는 등 불교의 화장법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로는 『주자가례』의 확대보급,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같은 교화서 간행 등 유교식 예법을 보급하기 위한 지속적인 조정의 노력으로 인해, 점차 유교식 상례가 정착되어갔다.
세종실록에는 1420년(세종 2) 대비 원경황후의 상례에 『주자가례』의 예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미 조선 전기에 유교식 상장례가 정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세종대에 편찬을 시작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성종대에 완성되어, 16세기 이후 상례의 근간으로 활용되었다.
경북 영주시 이산면에서 조사된 16세기 전기의 묘와 출토복식에서도 『국조오례의』에 의거한 유교식 상장례 제도의 확립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16세기 중엽 안동지역에서도 『국조오례의』에 기초한 유교식 상장례가 행해졌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상례의 절차를 살펴보면, 우선 망자가 숨을 거둔 후 사흘 동안 염습의 단계가 진행된다. 죽음을 확인하면서 시신을 싸기 시작하는데, 습, 소렴, 대렴의 절차에 따라 여러 겹의 옷을 입힌다. 이것이 수의인데, 본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 뿐 아니라, 친지 등 가까웠던 주변 인물들의 옷을 사용하기도 한다. 소렴, 대렴이 진행되는 사이에, 제(祭)를 올리고 곡을 한다.
절차는 집안이나 지방에 따라 조금씩 방법이 다르지만, 대개 시신에 베개를 받쳐주고, 손은 악수(握手)로 싸매며, 귀와 콧구멍은 솜으로 틀어막으며, 머리에는 두건, 복건, 망건을 씌운다. 수의를 입힌 시신의 두 손을 배 위로 모으고 이불 몇 겹으로 시신을 싸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모의 장례를 치를 경우 땅에 묻고 와서도 그 절차는 끝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일반적으로 탈상(脫喪)하기까지 27개월이 걸렸다. 집에 상청을 차려 부모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렸으며, 아예 산소 곁에 초가집을 짓고 공양하기도 하였다.
* 사진"1"출처 : 이은주 외 / 〈한국의 수의문화〉 / 신유
* 사진"2,3"출처 : 권영한 / 〈사진으로 배우는 관혼상제〉 / 전원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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