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思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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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의 발전
미약한 기록의 봉정사 중창

봉정사 중수와 관련해서는 「천등산봉정사기」에 창건 이후 9번의 중창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양법당중수기」에는 대웅전과 극락전을 8번 수선하였다는 기록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나 연대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극락전의 보수

가장 오래된 극락전 중수 기록은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1363년(고려 공민왕 12) 공민왕의 중수 기록이 전한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몽진 왔다가 환도했던 시기에 이루어진 중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상량문」에 의하면 1625년(인조 3) 두 번째 중수가 있었다. 「양법당중수기」 기록으로 볼 때 1809년(순조 9) 세 번째 중수가 있었다. 더불어 1863년(철종 14)에도 보수가 있었고, 1882년(고종 19) 4월에 극락전 현판의 개채(改彩)가 있었으며, 1972년에 해체보수를 실시했다. 봉정사로 오르는 길도 마찬가지다. 대개 유명한 절은 절 가까이에 울창한 숲길이나 산세가 뛰어나 주변이 예사롭지 않은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이나 봉정사는 다 가도록 조금도 그런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시골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때문에 봉정사로 가는 길은 마치 고향 가는 길과 유사하다.

특히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대웅전 앞마당에서 남쪽을 향하여 사방을 둘러보면 천등산에서 내려뻗은 좌우의 산등성이가 적당한 높낮이로 울타리처럼 겹으로 둘러져 있고, 앞에는 일부러 다듬은 것 같은 봉우리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주변을 둘러싼 산세가 대웅전 공간을 가운데 두고 바깥에서 감싸듯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대웅전 앞마당 앞에서 당연히 포근히 안겨 있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전면에 예쁘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양쪽 산자락이 양팔로 껴안듯이 내리뻗다가 멈추니, 남아 있는 정면의 허한 공간을 채워주고 허공으로 흩어질 시선의 허전함을 무마하고 있다.

대웅전의 보수

「상량문」과 「천등산봉정사기」, 「양법당중수기」 등 현존하는 기록을 통해 살펴볼 때 대웅전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은 1601년(선조 34) 개연(改椽) 중수, 건륭(乾隆, 1736~1775) 연간 중수, 1809년(순조 9) 개수 및 증채(增彩)가 있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63년 지붕 보수, 1975년 단청 및 부분 보수, 1996년 툇마루 보수 및 난간보수가 이루어졌으며, 2000년 전면적인 해체보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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