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전설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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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리
- 고란리는 길안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7km 정도를 가서 왼쪽에 난 작은 도로를 따라 가면 나타난다. 이 길의 입구에서 1km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있다. 마을 뒤쪽에는 계명산이 있는데 요즘 여기에 자연휴양림이 개발되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란리는 원해 임하현의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고종 32년에 길안면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대사리, 미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고란리에는 58세대에 99명이 거주하고 있다.
구수리
- 구수리는 길안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6km 정도 가면 구수리의 원구수가 나타난다. 원구수에서 직진을 하면 대곡리와 배방리 그리고 청송군으로 갈 수 있으며 좌회전을 하면 구수2리와 용계리로 가는 길이다. 구수리 동쪽에는 사일산이 있는데 구수리 주민들은 새알산이라고도 한다. 이산에 봉우리가 2개 솟아있다. 이것이 새의 날개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구수리에는 원구수를 포함하여 송산, 오름실, 남촌 등 4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그리고 세덕사, 송정 등의 유적지가 있으며 현재 101세대에 18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구수리는 한말(韓末)에 임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계동, 용계동 일부를 병합하여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금곡리
- 금곡리는 길안면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의 백자리와 고란리, 송사리 그리고 의성의 옥산면과 접하고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9km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작은 도로가 나오는데 이 길이 금곡리로 가는 길이다. 금곡이라는 명칭은 쇠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 하여 붙인 것이다. 금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미천리와 묵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곡리라는 행정명칭을 사용하였으며 현재 81세대에 153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곡리
- 대곡리는 길안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양곡재를 넘고 구수리를 지나서 7.5km 정도 가면 왼쪽에 작은 길이 나타난다. 이 길에서 산고개를 넘어 3.5km 정도 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대곡2리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대곡1리로 가는 길이다. 대곡리의 주변은 험준하고 높은 산들이 있으며 대곡리의 여러 자연마을들은 이 산들에 둘러져 있는 분지형태의 마을이다. 마을의 일부분은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었으며 현재 한실을 비롯하여 보초, 하직골, 개멸, 추곡, 모현 검단 등 모두 7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대곡리는 원래 한말까지 임하현의 지역이었다.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임남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정에 따라 부곡리, 검단리와 청송군 부서면의 병보리를 병합하여 대곡리라고 하면서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대곡리에는 62세대에 1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대사리
- 대사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왼쪽에 대사리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로 접어들어서 2km 정도 가면 대사리가 나타난다. 대사리는 청송군과 인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1리와 2리로 되어있다. 자연마을은 공수, 토일, 사곡, 한절골, 아랫한절골, 오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대사리에는 90세대에 14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사리는 원래 임하현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길안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송군 현북면의 대사동을 병합하였다. 이때의 구역이 거의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음리
- 만음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으며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면사무소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영천, 포항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1.7km 정도 가면 왼쪽에 만음2리를 나타내는 입석이 있다. 여기서 70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에 만음1리를 가리키는 입석이 나타난다. 만음리는 현재 원만음, 개곡, 서당리, 명곡 등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전에는 각기 행적구역상 분리된 마을이었다. 만음리에는 현재 105세대에 199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묵계리
- 묵계는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5km 정도 가면 나타난다. 옛날부터 길안현에 속하여 오다가 1914년 오락을 병합하여 현재의 묵계리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 1리와 2리로 구분되며 1리에는 선항, 상리, 하리, 새마을, 국만 등 5개의 자연마을이 있고 2리에는 오락 1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묵계리에는 현재 147세대에 248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 하다가 조선 연산군 6년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선생이 여기로 우거(遇居)하면서 그 다음 해에 묵촌(默村)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선생이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건립하면서 그 정자 앞 냇물이 잠잠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묵계(默溪)라 칭하였다.
배방리
- 배방리는 길안면의 동쪽 끝자락에 있다. 동쪽으로는 청송군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의성군과 경계를 하고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8.5km 정도 가면 배방리가 나타난다. 현재 이 마을에는 57세대에 1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배방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안동군 임남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구수리 일부를 통합하여 배방리라고 하였다.
백자리
- 백자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만음리로 접어들어 서쪽으로 3km 정도 가면 나타난다. 백자리는 처음부터 길안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전의곡, 우음산, 신방동을 합하여 백자동이라고 하면서 현재로 이어져 왔다. 현재 백자리에는 65세대에 123명이 거주하고 있다.
송사리
- 송사리는 길안면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송사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송사리인데 왼쪽으로 들어가면 대사리로 가는 길이다. 현재 1리와 2리로 구별되어있는 송사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이었으나 고종 32년(1895)의 지방관제 개편에 의하여 안동군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송제동, 마사리, 대사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송사리가 되었는데 이것은 송제와 마사의 명칭을 따서 만든 명칭이다. 현재 송사리에는 163세대에 295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용계리
- 용계리는 길안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검박골과 교회마 등 2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그전에는 원용계를 비롯하여 도랫마, 도연, 길목 등의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모두 수몰되어 사라지고 현재의 마을들이 새로 형성된 것이다. 용계리는 원래 안동군 임남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전동, 하국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길안면에 편입되면서 용계리라고 하였다. 현재 용계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용계은행나무가 보호되고 있으며 22세대에 48명이 거주하고 있다. 용계라는 명칭은 약계(藥溪) 권순기(權舜紀) 선생이 마을 뒷산을 보고 용이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천지리
- 천지리는 길안면의 면사무소가 있는 소재지이다. 안동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1리와 2리,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면의 중심부에 해당되는 것만큼 번화가라고 할 수 있다. 자연마을도 장터 위주로 발달하였으며 2002년 11월 30일 기준으로 458세대에 816명이 거주하고 있다. 천지리는 성제(城堤), 샘나루, 천지(泉旨)라고 한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샘물이 솟아나는 큰 웅덩이가 있었는데, 샘물의 맛이 좋다고 하여 샘나루, 천지라고 하였다. 한편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족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피난올 것이라 하여 성을 쌓았다가 왕이 오지 않고 현재의 예천군 하리면으로 가버렸으므로 성(城)을 완성하지 않고 철거한 흔적이 있어 성제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하리
- 현하리는 길안면의 서남쪽에 있으며 1리, 2리, 3리로 구분된다. 길안면의 남쪽에 있어서 의성과 인접하고 있기도 하다. 현하리는 원래 길안현(吉安縣)의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길안면이 되고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임서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상리, 현하리, 오도리 일부를 합쳐서 현하리라고 하였으며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임하면에 편입되었다가 1974년에 길안면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2002년 11월 30일 기준으로 231세대에 381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