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 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宜河)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위병실(衛兵室)
대문간채의 안쪽에는 위병실과 마구간이 있다. 위병실은 류상조(柳相祚)공이 병조판서를 제수 받고 병사들을 위해 급히 지은 것이며, 마구간은 2칸으로서 꽤 넓은 면적이며, 위병(衛兵)들이 사용하였다 한다. 대문간채 바깥쪽에는 곳간(庫間)이 있다.
사랑채
대청(大廳)의 좌우에 사랑방과 마루 딸린 건넌방이 있으며, 사랑방과 대청 사이에는 분합문이 있어서, 분합문을 들어올리면 대청과 한 공간이 된다. 사랑채 전면과 측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달았다. 사랑채 기단(基壇)은 간지석(間知石:돌축대를 쌓는 데 쓰는 앞면이 판판한 네모뿔 모양의 돌) 으로 높게 쌓았으며, 장대석(將臺石:섬돌 층계나 축대에 쓰려고 길게 다듬은 돌)으로 마감하였다. 기단을 높게 한 것은 큰 홍수(洪水)에 대비를 하고 건물의 규모와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대청에 걸린 편액
대청에는 명필 미수(眉수) 허목(許穆)공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의 충효사상을 기려서, 전서체(篆書體)로 충효당(忠孝堂)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서애 선생은 운명 다섯달 전 시 한수를 지어서 아들들에게 보였는데, 충효사상이 잘나타나 있다. 勉爾子孫須愼 忠孝之外無事業 (권하노니 자손들아 이를 꼭 앞세워라 충효 밖에 할 일은 없다는 것을)
판문(板門)
대청 오른쪽 건넌방에 붙어 있는 마루 앞에는 판문(板門)이 달려 있다. 이 판문은 집이 서향(西向)을 하고 있어 서향집의 단점(短點)인 오후에 내리쬐는 햇빛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샛담과 일각문
사랑채와 대문간채 사이에는 담을 쌓고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놓았는데, 일각문을 지나면 안대문이 나타나고, 안대문을 통하여서 안채로 들어 갈 수 있다.
안채
안채에는 마당 북쪽에 장독대가 있고, 동편에 안방과 대청이 있다. 안채의 높은 기둥은 안방 천장 위로 다락을 두기 위함이다. 안방 옆으로 부엌과 작은 방들이 여러 개 딸려 있다. 두리기둥 위에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의 집이며, 합각마루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안채 대청과 판장문
안방 앞에는 띠살창호를 달았고, 옆면과 뒷면에는 판장문을 달았다. 이는 내부의 밝기와 안정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사당(祠堂)
사랑채 뒤쪽에는 사당(祠堂)이 있다. 중문과 동협문, 서협문의 3문(三門)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3문은 공경대부(公卿大夫)를 모신 집에서나 세울 수 있으며,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류성룡 선생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으므로 3문을 낸 것이다.
영모각(永慕閣)
영모각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보물 제160호와 보물 제460호 및 서애 선생 필첩, 영의정임명교지, 도체찰사교서, 선조 친필 밀부유서, 광국공신교서 등 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 영모각이라 쓰여진 현판은 개관식 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써서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