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영의정(領議政)으로서 사도(四道) 도체찰사를 겸임하였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선생이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임진란에 관하여 자필로 기록한 문헌 및 수집한 각종 자료들로서, 임진란의 연구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며 지정 목록은 다음과 같다.
진사록(辰巳錄) 3책 (보물 160-1호)
진사록(진사록, 보물160호) 임진년(1592년)과 계사년(1593년)의 기록이란 뜻으로 이름지은 책이다. 임진왜란중 선생이 도체찰사(최고 책임자)로서 전지에 머물면서 군의 동정 전황을 국왕에게 급보하고 또한 긴요한 대비책을 건의한 문서들을 수록한 책자이다.
난후잡록(亂後雜錄) 2책 (보물 160-2호)
임진란 전후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며, 전반부는 간행본 징비록 16권본 말미에 수록된 녹후잡기(錄後雜記)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므로 녹후잡기는 이 난후잡록을 첨삭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지만, 그 배열과 내용에는 조금 차이점이 있다.
근폭집(芹曝集) 2책 (보물 160-3호)
임진란(壬辰亂) 중에 선생이 국왕 선조에게 올린 차자(箚子), 계사(啓辭)를 등출(謄出) 편찬(編纂) 책자(冊子)이다.
중흥헌근(中興獻芹) 1책 (보물 160-4호)
징비록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일부만 간추려 복사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군문등록(軍門謄錄) 1책 (보물 160-5호)
선생이 영의정으로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를 겸하는 동안(1595-1598) 선조(宣祖)에게 올린 군무에 대한 건의문과 각 지휘관에게 군병의 훈련, 대오(隊伍)의 편성과 요새(要塞)의 수비 등을 지시한 통첩(通牒)을 수록한 책자이다.
정원전교(政院傳敎) 2책 (보물 160-6호)
임진란(壬辰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동안에 내치(內治)·외교(外交) 및 군사를 총지휘한 선생에게 승정원(承政院)으로부터 77통의 왕명(王命)이 전달되었는데 그 원문(原文)을 모은 것이다.
조어제당장서화첩제문(正祖御製唐將書畵帖題文)
부채제공발(附蔡濟恭跋) 2책 (보물 160-7호)
정조(正祖)가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에게 명하여, 당장시화첩(唐將詩畵帖)을 본 후에 소감을 기록하고, 번암 채재공 선생이 발문(跋文:끝에 본문의 내용의 대강이나 또는 그에 관계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을 쓴 것이다.
당장시화첩(唐將詩畵帖) 1책 (보물 160-8호)
임진란 당시에 조선에 왔던 명(明)나라 장수들의 시와 그림 등을 모아서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당장서첩 (唐將書帖) 2책 (보물 160-9호)
임진란 때 내원(來援)한 명(明)나라 장수(將帥) 30여명이 선생에게 보낸 서한(書翰) 43통을 수록한 것이다. 긴요한 정치적 안건이나 작전·군수사항 등에 관한 논의가 글 속에 보인다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갑진년/병오년/갑자년/병신년/정유년 각 1책 (보물 160-10호)
당시에 사용하던 달력인 대통력(大統曆)에 선생이 주요 사항 등을 해당 날짜 아래에 적어 넣은 것으로, 역사적 자료로도 중요하지만 관상감(觀象監)에서 발행한 오래된 역서(曆書)라는 점과 인쇄에 사용한 관상감활자(觀象監活字)를 연구함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
호성공신교서(扈聖功臣敎書) 1축(軸) (보물 160-11호)
임진란 때 선생은 서울에서 의주(義州)까지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였으며, 서울의 수복에 공로(功勞)가 컸다고 하여 1604년(宣祖 37년) 6월에 호성이등공신(扈聖二等功臣)으로 서훈(敍勳)되었는데 이것은 같은 해 10월에 내린 한석봉(韓石峯) 필적의 교서(敎書:임금의 명령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