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류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이전에 가난한 안씨 집안의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헐벗은 객승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일으켜 집으로 데려와서 극진히 치료하여 원기를 회복시켰다. 객승은 노부부에게 보은을 하려 하나 가진 것이 없으므로 다만 후세를 위하여 묏자리를 잡아 드리고자 하는데, 두 곳의 묏자리 중 한 곳을 원하는 데로 잡아주겠소. 한 곳은 자손 중에 3정승이 태어날 수 있는 터요, 또 하나는 당대에 천 석의 곡식을 거두어 부자가 될 수 있는 자리요. 하였더니 워낙 가난하게 살아온 처지라 나중에 정승보다 우선 가난을 면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여 천 석을 거둘 수 있는 묏자리를 잡아줄 것을 원하였다. 객승은 지금의 「노가리」 옆 서쪽 산 「부게」쪽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초상이 나서 객승이 잡아준 자리에 묘를 썼더니 그 해에 큰 홍수가 나서 강에 넓은 갯벌이 만들어 졌다. 그 곳을 개간하여 온 들에 피를 심어 가을에 추수하니 천 석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묘를 「피천석 묘」라하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