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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농업기술센터

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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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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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의 고 조리서
  • 수운잡방

「수운잡방」의 저자, 탁청정 김유

수운잡방의 저자 탁청정 김유는 광산 김씨 밀직부사공파로 예안 오천에 처음 자리를 잡은 김효로의 둘째 아들로 1491년에 태어났다.
자를 유지(綏之)라 하였으며 탁청정(濯淸亭)은 그의 호이다. 공(公)은 성격이 호협하여 생원시(식년시, 1525년)에 합격하였으나 오히려 무(武)에 뜻을 두고 수차례 무과에 응시하였으나 마침내 이루지 못하자 벼슬에의 의지를 버리고 관직에 있는 형을 대신하여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효도를 다하였다.

또 공의 종(從) 고모부가 되는 현감(縣監) 김만균(金萬均)은 문절공 김담의 아들인데 공이 어렸을 때부터 그 준수함을 사랑하여 데려다 아끼고 지도하여 주었다. 또한 당신의 아들이 없었으므로 공에게 그의 부유한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로 인해서 공은 물려받은 넉넉한 재산을 기반으로 기존의 정자들을 수리하고 즐겨 손님을 접대하였다. 특히 지금도 옛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탁청정은 그 규모가 크고, 또 그 우아함은 개인 정자로는 영남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이 쓴 공의 비문에 의하면 공은 ‘성품이 호협하여 빈객(賓客)을 좋아했는데 옛날 현감공이 우암(愚巖)위에 정자를 세워 낙동강을 굽어보므로 침류정(枕流亭)이라 이름하였고 또 집 옆에 정자가 있었는데 공이 모두 수리하여 확장하고 손님을 맞아 즐기며 혹은 밤을 새우되 피로한 빛이 없으니 선비들이 이 고을을 지나면 반드시 찾아와서 즐기었다. 비록 폐의파립한 사람이라도 친절히 대접하고 만일 옳지 못한 사람을 보면 준업하게 꾸짖어 조금도 용서가 없었다’고 하였다. 공의 호방(豪放)하고 접빈(接賓)을 즐기며 의협(義俠)함이 잘 나타나 있다. "수운잡방"은 이러한 환경 아래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수운(需雲)"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고전 『역경(易經)』에 등장하는 용어로 "구름 위 하늘에서 음식과 주연으로서 군자를 대접한다. [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잡방(雜方)’이란 갖가지 방법을 뜻한다.
즉 "수운잡방"은 풍류를 아는 군자에게 걸맞은 요리법인 셈이다.

퇴계는 공의 비문에서

『 아! 공이 낳을 때부터 자질(資質)이 뛰어났네. 이미 시(詩)와 서(書)를 익혔고 또한 육도삼략(六韜三略)도 배웠도다. 문(文)은 소과(小科)에 합격했으나 무(武)는 뜻을 이루지 못 하였네. 시골에서 그대로 늙으니 남들이 애석히 여겼네. 출세에 뜻은 못 폈으나 일신(一身)은 자족(自足)하여 좋은 곳 오천(烏川)에 밭도 있고 집도 있네. 주방(廚房)에는 진미가 쌓여있고 독 속에는 술이 항상 넘치도다. 제사(祭祀)하며 봉양(奉養)하고 잔치로써 즐겼네. 생전에 즐거운 일은 자리위의 아름다운 손님이요, 하늘에서 내린 자손은 뜰 앞의 난옥(蘭玉) 일세. 용감한 무신(武臣)이여 아름다운 문사(文士)로다. 불어나는 좋은 경사(慶事) 고문(高門)에 걸렸네. 어쩌다가 대단! 찮은 병세로 갑자기 돌아가니 금할 수 없는 것은 슬픔이요 남은 것은 복이로다. 아름답다 현부인(賢婦人)을 동광(同壙)하라 유언했네. 무덤 앞에 돌 새기니 천추(千秋)를 지내어도 다함이 없으리』 라 하였다.

수운잡방의 산실 '오천군자리'
집 가까이에 지은 '탁청정'

영농지원과 054-840-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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