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설화 전승의 특성

우리의 안동이야기

설화전승의 특성

우리 고장은 이야기의 고장이라고 할만큼 많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설화를 수집한 자료를 시·군별로 비교해 볼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작품의 설화가 우리 고장에서 수집되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학자들이 다른 고장에 비하여 우리 고장에서 설화 조사를 많이 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학자들이 전국의 여러 지역 가운데 특히 안동에서 설화 조사를 많이 한 까닭은 안동에 설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고장에 설화가 이처럼 많은 이유는 어디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영덕 지역에도 설화가 많이 수집되어서 안동과 영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덕은 일제 이전에 군 소재지가 영해에서 영덕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영해가 지역문화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영덕 영해'라 하지 않고 아직도 '영해 영덕'이라고 한다. 영해는 안동과 더불어 선비의 고장이라는 뜻으로 사부향(士夫鄕)이라고 할 뿐 아니라, 작은 안동이라는 뜻으로 소안동(小安東)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안동과 영덕처럼 설화가 많은 지역은 사부향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역사적 뿌리가 깊고 문화적 수준도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현지조사 경험에 의하면 경주에도 설화가 아주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었다. 어느 곳을 가든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같은 기간에 수집된 설화 편수를 보면 경주만큼 이야기가 많은 곳도 없었다.

안동이나 경주처럼 역사적 뿌리가 깊고 문화적 중심지인 곳에 설화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오늘의 문인들이 서울로 몰리듯이, 전국의 이야기꾼들이 이런 고장에 모여들게 된다. 옛날에도 명승고적을 찾아 여행하는 나그네가 많았다. 나그네가 묵어 가는 사랑방에는 으레 이야기판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과객들에 의해 각지의 이야기가 안동에 모이게 되는가 하면 안동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고장에서도 안동의 이야기가 널리 전승된다. 과거에 안동과 경주와 같은 곳에는 이야기 잘하는 과객들이 많이 모여들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안동에 이야기가 풍부한 또다른 이유가 있다. 안동에는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한 인물과 문화유산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야기 중에서도 전설은 증거물이 있어야 한다. 안동에는 전설의 소재가 될 만한 인물과 유적, 풍속이 많다. 당대 문화의 중심지였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많은 인물과 유적, 풍속 등이 모두 중요한 전설의 소재이다. 그러므로 인물을 많이 배출하고 문화재가 많은 고장에서는 그에 관한 전설도 많게 마련이다.

우리 고장에서 전승되는 신화들은 주로 당신화이다. 마을에서 섬기는 동신에 관한 신화를 흔히 당신화라 하는데, 주로 동신이 자기 마을 당(堂)에 좌정하여 동제를 올리게 된 내력에 관한 것이다. 당방울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방울을 당신으로 모시고 당고사를 지냈다는 신화가 많다. 다음으로는 시집을 못간 처녀가 죽어서 동신이 되었다거나,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총각이 죽어서 동신이 되었다는 이야기 외에, 노승이 마을에 와서 죽어 그 자리에 당을 짓고 동신으로 모셨다든가, 또는 시집가는 날 가마꾼들이 길싸움을 벌이다가 가마채가 벼랑에 떨어지는 바람에 색시가 죽게 되자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당신으로 모시고 동제를 올린다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하늘에서 방울이 날아와 점지하는 경우가 아니면 억울하게 죽은 처녀 총각이 당신으로 모셔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물 전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공민왕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는 점이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안동으로 피난을 왔으므로 안동사람들로서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공민왕과 관련된 당신화에서부터 공민왕이 썼다는 영호루 현판, 오마대 전설 등이 전승되지 않을 수 없다. 공민왕 다음으로 지체가 높은 인물이 안동을 다녀간 경우가 왕건과 견훤이지만 고창전투 관련 전설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견훤이 지렁이 자손으로 이야기되는가 하면 마침내 패배하는 인물로 이야기되는 까닭은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 고장 출신인 삼태사(三太師)와 다툰 적이었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퇴계 선생과 서애 선생에 관한 전설이 많은 것은 자연스럽다. 퇴계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훌륭한 학문과 인품을 다룬 것이지만, 이와 달리 예사 사람들과 다름없는 인간적인 한계를 다룬 것도 적지 않다.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퇴계를 고매한 학자로서보다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인간미 넘치는 친근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서애 선생 전설은 으레 겸암 선생과 함께 이야기되는데,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과 달리, 겸암 선생은 도통한 인물로서 사명당 못지 않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을 척척 해내는 이인으로 묘사되고 상대적으로 서애 선생은 무능한 대감으로 이야기된다.

안동출신이 아닌 인물로는 맹사성과 이여송 전설이 널리 전한다. 이여송은 어느 고장에서나 명당의 혈(穴)을 잘라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이야기되는데, 안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 고장에서는 명당의 혈만 자른 것이 아니라, 제비원 미륵불의 목을 잘라서 피를 흘리게 했다고 함으로써 이여송은 우리의 자연과 함께 문화도 크게 훼손했음을 말한다. 이여송이 부정적인 인물로 이야기되는 데 비하여, 맹사성은 긍정적인 인물로 이야기된다. 맹사성이 안동 부사로 있을 때 훌륭한 공적 세 가지를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안동 지역에 눈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서 절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라 고쳤더니 주민들의 눈병이 다 낫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맹사성과 같은 훌륭한 인물들을 안동으로 끌어들여서 지역사회를 위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장의 위세를 높이는 일이다.

이 밖에도 안동에는 우남촌과 같은 머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용동영감과 같은 가난한 농사꾼 이야기가 있다. 우남촌은 무식한 머슴이지만 주인이 머슴이라고 하여 음식 차별을 하거나 마을 아이들이 높임말을 쓰지 않고 무시할 경우에, 이를 지나치지 않고 재치와 역습으로 바로잡았다. 노동자로서 권익을 쟁취해 가는 머슴 우남촌의 의지가 주목된다. 용동영감은 가난하고 미천한 처지에 있지만, 유식하고 부자이며 지체 높은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서서 그들을 골려준다.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비판의식이 두드러진다.

유적 전설은 도산서원과 개목사 영호루, 임청각, 봉정사, 제비원 등 안동의 대표적인 문화재에 얽힌 것들이다. 이들 유적은 크게 불교유적과 유교유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교유적의 전설들은 대부분 현판 글씨에 관한 이야기들이며 불교유적에 얽힌 전설들은 주로 절의 이름이나 절이 지어진 유래를 설명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유교유적에서는 도산서원 현판을 한석봉이 썼다든가 영호루 현판을 공민왕이 썼다고 하여 쓴 인물과 글씨의 가치가 문제된다고 한다면, 불교유적에서는 개목사 이름의 내력이나 봉정사 또는 제비원 연미사가 지어진 연유를 이야기함으로써 그 인연을 강조한다. 유적에 따라서 종교적 세계관이 담겨 있는 셈이다.

풍속 전설은 고시래나 한식의 유래 등 일반적인 풍속에 관한 것이 있긴 하지만, 우리 고장에는 역시 우리 고장의 민속놀이에 관한 풍속 전설이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동채싸움이나 놋다리밟기의 유래와 하회별신굿의 하회탈을 만들었다는 허도령 전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서후면 저전리에서 전승되는 화상싸움에 관한 전설도 독특하다. 이들 풍속 전설을 통해서, 동채싸움과 놋다리밟기와 같이 우리 고장에서 널리 전승되고 있는 대단위 민속놀이는 한결같이 고창전투나 공민왕의 안동 피난과 같은 나라 차원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하회별신굿이나 화상싸움처럼 특정 마을에 한정되어서 전승되는 소규모 민속놀이는 그 마을의 특수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명 전설은 지역마다 다르면서 같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고장에 따라 지명이 다르기 때문에 지명전설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같다고 하는 것은 흔히 지명전설은 이야기로서 줄거리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단순한 지명 설명에 머문다는 점이다. 안동의 지명전설도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간단한 설명에 머문다. 그러나 용상동과 마뜰의 지명은 상당히 긴 줄거리를 갖춘 전설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홍수와 골재 채취 등으로 선어대 밑의 소(沼)가 점점 묻혀 가는 상태이나 과거에는 여기가 깊은 소를 이루고 있었을 뿐 아니라, 몇 구비를 이루는 절벽이었으므로 그 속에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한 지형에 의하여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승되고 용상(龍上)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 고장에서 전승되는 전설을 통해 볼 때, 설화의 전승 상황은 지역의 문화적 역량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동이 설화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곧 안동이 문화의 고장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고 문화유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전설의 소재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 전설은 인문주의에 입각하여 힘센 장수보다 선비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으며, 훌륭한 인물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떠받들지 않고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데 더 적극적이다. 그리고 못 배우고 가난하여 미천하게 살고 있는 민중들도 지체 높은 신분이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의지와 재치를 높이 사고 있다. 그리고 유적 전설에도 건축물 자체보다 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역시 학문과 서예를 존중하는 인문정신이 특별히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자치행정과 054-840-6084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