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河回)는 ‘물이 돌아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마을의 전통가옥들은 부용대와 낙동강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에는 국보(하회탈, 징비록), 보물(양진당, 충효당), 중요민속자료(남촌댁, 북촌댁 등), 사적, 무형문화재(하회별신굿탈놀이) 등 모두 18점의 문화재가 있다.
1999.4.21 엘리자베스Ⅱ세 영국여왕이 방문한 가장 한국적인 마을임.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해동주자라 일컬어지는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李滉)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선생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의 높은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선조 8년(1575)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한석봉의 친필로 된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광명실, 전교당, 상덕사, 장판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에는 안동호가, 뒤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에워싸고 있어 멋과 서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봉정사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인 672년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절에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과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보물 제55호 대웅전 외에 화엄강당, 고금당,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각 건물들이 상호간에 보여주는 균형미가 아주 뛰어나다.
임청각(보물 제182호)
15년(중종 10)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이씨 이명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50여 칸만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인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의 생가이다.
병산서원(사적 제260호)
이 서원은 본래 풍악서당이라하여 조선 명종18년(1563) 구 풍산현 북쪽에 창건되었으나 선조5년(1572)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6년(1614) 서애 류성룡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사묘를 짓고 향사하였다. 서애 류성룡은 도학, 문장, 덕행, 글씨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영남 후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병산서원은 수려한 모습의 산과 서원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 드넓은 백사장 등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태사묘(경북 기념물 제15호)
고려 건국사 후백제 견훤을 토벌한 개국공신 김선평, 권행, 장정필 등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1481년(성종 12년)에 관찰사 김자행이 묘우(廟宇)를 세울 터전을 마련하고, 1540년(중종 35년) 안동부사 김광철이 현 위치에 사묘를 건립하였다.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높이는 17m이고 기단 폭은 7.75m이다.
지례예술촌
지례마을은 조선 숙종임금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忖) 김방걸(金邦杰)과 그의 중형(仲兄) 방형(邦衡)의 자손이 340여년간 동족부락을 이루어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전형적 사림(士林)의 마을이다. 1663년 조선 현종 때 건립된 지촌종택을 임하댐 건설로 마을뒷산 중턱에 옮겨 지어 한국 최초의 예술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