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당선화

우리의 안동이야기

당선화

천사(川沙) 성황당

옛날에 마을주민 한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나를 믿어라라고 이야기를 했어.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꿈을 깼거든.그 다음날 그 사람이 집에 걸터 앉아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방울소리가 들리더니, 마루에 방울이 떨어졌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겨서 신이 준 방울이니, 이 방울을 모셔야 되겠다.고 의견을 모았어.그후 사람들은 방울을 성황당에 옮겨 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방울이 서낭대에 걸려있지.서낭당 안에는 호랑이도 모시고 있는데, 서낭이 내려와서 올라갈 때는 호랭이를 타고 올라 가거든.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다가 깊은 밤에 호랑이 거동을 본 사람도 있지. 그리고 당고사에서 부정이 있거나,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큰 소리로 울기도 해.서낭신과 호랑이는 징소리를 가장 듣기 좋아해서 매구(풍물)를 자주 치지.예전에는 서낭대 싸움도 자주 있었는데 사천 서낭과 이웃의 묘곡 서낭이 주로 많이 싸웠어. 어느 해인가 싸움 도중에 묘곡 서낭대가 부러져 지금도 묘곡에는 서낭대가 없어.

도산면 단천리 / 1970 / 이원윤 , 남 , 66

수곡 무실의 처녀당

마을에 살던 과년한 처녀가 시집을 못 가고 죽었는데, 그후로 이제까지 별로 탈이 없던 마을에 재앙들이 자꾸 생겨서 마을굿을 했어. 무당이 처녀를 통해 말하기를 나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 뒷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나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게 해 다고. 그랬거든.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의 후에 산에 당을 만들고 정월 열나흗날이면 추렴을 해서 제를 지내게 되었어. 그 후에 그 산을 처녀를 모신 당이 있다하여 아기산이라 부르기 시작했지.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제사를 지낼라 하니 산이 높아서 음식 나르기가 불편해서 안돼, 그래서 마을굿을 하고 당을 지금의 장소인 동리 어귀로 옮겨 모시고 이름도 처녀당이라 바꾸었지.당이 얼매나 영험한 지, 당에 대한 정성이 부족하면 마을에 재앙이 나고, 행인들까지 재앙이 번지곤 하는데, 언젠가 지나가던 우마가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기도 했어요.제를 드릴 때는 제관과 음식을 마련하는 유사들은 인적이 그친 밤에 개울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것을 피하여 하루 종일 집에서 나가지 못해요. 그리고 첫닭이 울기 전에 제수를 차려 가지고 붉은 흙을 음식 차리는 집에서 당집까지 뿌리고, 음식을 마련하는 집에는 새끼줄(금줄)을 걸고 흰종이를 꽂아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아요.

임동면 수곡리 / 1968 / 유길수 , 남 , 38

용상동 여랑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는데 한 여랑를 데리고 와서 늘 곁에 두고 귀여워했어.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해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이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왕에게 화살을 쐈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가 대신 맞았어. 왕을 살린게지. 그후 왕이 슬퍼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지만 여랑이 고마 죽어버렸어. 죽으면서 여랑이 하는 말이나는 홍건적을 물리치는 신이 되겠다 그랬거든. 그 유언때문인지, 왕이 홍건적과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여 난을 평정했어. 그 후 다시 환도했는데, 왕이 여랑을 생각해서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에 당집을 지어 모시도록 명을 내렸어. 그래서 주민들이 여기에 당집을 짓고 여랑당이라고 부르며 안동부사가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에 제를 지내게 된게라.

안동시 용상동 / 1994 / 지명유래총람

임동면 마령리 상당나무

옛날에 어느 노승이 마을에서 시주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목이 말라 샘에서 물을 마시고는, 쉴려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가 죽었어요. 한참 있다가 마을사람들이 노승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는데, 그 후 마을에 기근이 나고 질병이 돌아 피해가 많이 났어. 그래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마을에 사는 여러 사람의 꿈에 노승이 현몽하여 사당을 지 달라.그렇게 말해서 사람들이 노승이 죽은 자리에 당을 지어 주니, 그 후부터 마을에 질병도 돌지 않고 농사도 잘 되었어요.지금 가보면, 당 옆에 상당나무가 있는데, 노승이 땅에 꽂고 쉬던 지팡이가 자라서 그리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하고, 또 여기서 뿌리가 다시 자라서 하당나무가 되었다고 그래요.

임동면 마령리 / 1992 / 안동의 전설

가마싸움에 희생된 남선면 원림리 각시당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한쪽은 험한 산이고 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비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단 말이래. 옛날에는 초행길 가마가 물러서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맛꾼들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비켜갈 수가 없어서 양측의 가마꾼들이 힘으로 맞부딪치게 된게라. 인제 가마를 맨 채 가마꾼들은 밀고 당기는 가마싸움이 벌어졌는데. 힘이 약한 쪽의 가마가 차츰 밀리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 그래 고마 가마 속에 타고 있던 색시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 그래가 갈라산 중턱에 이날 죽은 각시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각시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된게라.

남선면 원림리 / 1992 / 최인연 , 남 , 38

풍천면 수리 국신사당

이 마을에 권사도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도령은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아서 고마 무술이 천하일품이었다 그래.어느날에 이 수리 마을 어디선가 하루종일 하늘을 울리는 용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르는데, 무술을 잘하는 사도 청년이 용마를 달래 보겠다고 나서거든. 그래 인제 사도가 말을 타고 마을을 달려나가서 낙동강 어귀 깊은 웅덩이 옆 큰 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용마에게 다가갔는데. 신통하게 용마는 사도가 가까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딱 그치는 게라. 그래 사도는 용말을 집어타고 위풍당당하게 마을로 돌아왔어. 그 후에 사도는 용마를 길들이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 몇 년 뒤 왜란이 일어나자 사도도 인제 용마를 타고 출전하게 되었어. 그래 막 마을을 나서서 국신당 앞에서 도착했는데 말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게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래서 먼일이 있는 갑다 하면서 술렁거랬어. 그리 권사도가 말에서 내려 이는 국신당을 돌보지 않아 신주가 노하신 것입니다.하며 국신사로 들어가 지성을 다해서 열심히 열심히 빌었어. 한참을 빌고 다시 말에 타니 그제서야 말 발이 떨어져 전장으로 나갔어.그 후에 인제 영험 있는 당이라고 마을에서 중론이 모아져 국신사 사당을 재건하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수리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인근 5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당 앞에서 굿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굿을 수동별신굿이라 그래. 한 400년 간 굿을 하고 있지.

풍산읍 / 1979 / 권오구 , 남 , 68

용계당에 좌정한 용계은행나무 살린 처녀

원 용계에 처음에는 탁씨가 살았다 그래. 다래 몽두리(몽둥이)를 치고 깊은 산속에 나무를 쳐내고 살 때에는 그러니까 은행나무 서 있는 곳이 집터였어. 그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건바골 들어가는 건너편에 등성에 묘가 있네. 그 은행나무 세운 처녀 묘가 있어 탁씨네가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거든. 어느 날에 처녀가 강가에 있는 하얗게 까놓은 은행나무가 물에 둥둥 떠서 내려오거든. 그래 처녀가 하도 이상해서 그 나무를 주워서 부뚜막에 요래 파고 묻어놓고 자꾸 물을 주었다 이게라. 물을 자꾸 주고 정성을 들이니 은행나무가 살았어. 촉이 올랐는데 차차 키웠어. 그리고 용계에 권씨네도 들어오고 이씨네도 들어오고 하다가 탁씨네는 가세가 없어져 물러갈 정도가 됐는데. 한 날 꿈에 마을 상노인에게 처자가 현몽을 하는데, 내가 저 건네 은행나무 살린 처년데 날 이 동네 성황으로 세워주면 이 동네를 편안하그러 해주겠다.고 요청하는게라. 상노인 한 사람뿐만 아니라, 동네 몇 사람에게 그랬든 모양이래. 그래서 용계 그 당 나무가 처녀 땅이 된게라. 밑에는 애기당이, 원 당이 옆에 있는데 당에는 고리짝에 치마하고 저고리하고 한 벌이 보쌈에 들어있어. 당 주위에는 돌담을 해놓고 언제든지 정월 열 나흗날 수리할 때, 정월 보름날 제사지내거든. 수리할 때 그 안에 들다보고 버들가지로 만든 고리가 있는가 없는가 들다보고 확인하고 수리하고 그래지.그 옛날에는 제사 지닐 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나락을 그날 찧어서, 떡을 하거든. 가령 오늘 제사날이면, 오늘 멍석에 널어 났다가 그대로 쪄가지고 떡과 밥을 해서 제사를 지냈는데 무심코 새가 고걸 먹으면 그 자리에서죽어버렸다 그래요.인제는(지금은) 청년들이 제사를 안 지낼라 카는게라. 귀찮거든. 정월 열하룻날에 공사해서 3일 기도를 하는게라. 기일을 해가지고 제사를 올리기 때문에 그래. 그러니 동네 청년들이 모두 귀찮다고 그만 둘라 캐.

안동군 길안면 / 1985 / 김종환 , 남 , 64

자치행정과 054-840-6084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