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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전설

우리의 안동이야기

인물전설

삼태사의 위패를 지킨 안금이

임진왜란 때 태사묘 묘지기로 있었던 안금이라꼬 있었어요. 그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피난을 갔는데, 안금이는 삼태사 위패를 모시고, 요사이로 말하면 길안면 국란이라는 데에 숨어 들어갔어요. 국란이라는 데에 피난을 가서는 간등 밑에 위패를 모시고 삼 년 동안을 안금이가 봉심(奉審) 했어요. 아침 저녁으로 분향(焚香)하면서 정성껏 모셨지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한몸 지키려고 정신이 없는데 안금이는 태사묘 어른들의 위패를 정성껏 모시면서 3년을 산속에서 살았는게라. 말하자면 어른들 위패도 피란을 했지, 그리고 임진왜란 3년 동안 아무도 제사를 모시지 못하는데 안금이가 제사를 드린것이. 그래 임진왜란이 평정이 되고 사람들이 다 자기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래보이 삼태사 어른들의 제사를 누가 모셨는지 그제서야 걱정이 되그던. 그래서 알아보니 안금이가 3년동안 정성껏 제사를 올린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역사람들이 상소를 해가지고, 안금이의 공덕이 지대하다. 나라에 어떤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이랬그던. 그이 나라에서도 공이 크니, 벼슬을 요구하던지, 하고싶은 대로 하여라. 그러니 아, 나는 벼슬을 요구할 수도, 벼슬할 자격도 못 되이께네, 이 어른들이 향사(享祀)친 뒤에, 퇴선을 내한데 갖다 놓고 제사를 지내 주만. 그걸로 나는 만족합니다. 그래서, 그 후에 퇴선하고 안금이 제사를 반드시 지내게 되었지, 지금도 안금이 축문이 따로 있어요.

안동시 옥정동 / 1981 / 권재영 , 남 , 66

자기 조상의 혈을 자른 이여송

이여송(李如松)이 중국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웃대에 대국 들어가서 살았던 조선사람이래. 따지고 보면 맹 조선사람이지. 그런데 임진왜란때 명을 받고 조선을 왔는데 조선의 산수를 보이 심상치 않거든. 이, 조선을 이래 놓아두면 안되겠다. 장군이 나기 시작하면 큰 장군이 나니,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이래 마음을 먹고 명산의 혈맥을 짤렀어. 여기 저기 혈을 짤랐는데, 짜르다 보이 저 조상 혈도 짤라부렀어. 그래 돌아가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문데 가가 보니 장군이 날 것 같아서 혈을 짤라 버렸니더. 그러니까. 듣고 있던 문중사람이 탄식하면서 야야, 거기는 우리 우리 몇 대 할뱄다.

북후면 옹천리 / 1981 / 강대은 , 남 , 81

지렁이 장군 견훤을 물리친 삼태사

견훤은 껄개이(지렁이)가 화한 사람인데, 나라를 차지하려고 안동으로 들어왔어. 안동에는 삼태사(三太師), 삼장군이 있었는데, 지렁이하고 싸우게 되었어. 싸워 보이 지러이한테 삼장군이 안된단 말이래.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어애이겼노 하면, 인제 지러이는 물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힘을 더 쓴단 말이래. 그러니 힘만 빠지만 물에 들어가서 힘을 내가 나오고, 또 힘만 빠졌다 하면 물에 들어갔다 나와 힘을 내고, 그런단 말이지. 싸우다가 그런걸 몇 번 겪어 보니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제 싸우다가, 또 물에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사람을 시켜서 간수(간장)와 소금을 몽땅 모아서 물에 쏟아 부었어. 견훤이 힘이 빠져서 물에가 보니 소금기가 있거든. 지렁이는 소금이 몸에 닿으면 몸이 녹는데, 견훤은 지렁이가 화한 사람이니 고마 힘이 사라졌다는구만, 그래서 이겼어. 그후에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는데 벼슬 이름이 삼태사라 그래.

북후면 옹천리 / 1981 / 강대은 , 남 , 81

여우동생을 물리친 겸암선생

서애 대감은 이름이 이룰 성(成), 용 룡(龍)자고, 그 형은 구름 운(雲), 용 용(雲龍)자 거든요. 근데 운용선생은 그 분은 숨은 선비고, 서애대감은 영의정도 하고 병조판서도 했으이께네, 출장입상(出將入相)한 사람이라. 서애대감하고 겸암선생하고는 한 형재간이고 우애도 깊었어요. 근데, 서애대감 어른이(아버지) 나이 칠십에 소가(小家-재혼)할라고 청해서 그래 소가를 했는데, 꽃 같은 젊은 부인을 데루 왔다는 게래. 그래 혼인을 하고 얼마 안있어 꽃 같은 동생을 하나 낳았어. 이레 보이 동생도 참 잘 났어요. 그래 아가 점점 장성하니 겸암선생하고 서애대감하고 수의를 했어요. 암만 시동생이지만 그래도 맹(역시) 아부지 혈육인데 우리가 그 동생을 장가 보내야 되니 선을 보러 가자.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가집으로 갔어요. 가니, 그 집에서는 서애대감 명성을 듣고 자꾸 딸을 줄라 그러거든요. 그런데 겸암 선생은. 동생, 거 안되네. 사람은 배필이래야 되지, 배필이 아니면 안되네. 하면서 반대를 하는게라. 그런데 서애 대감은 가문도 좋고, 여러 가지 다 좋은데 혼인을 성사시키지요 하면서 자꾸하자 졸라도 겸암선생은 안되네 안되네. 한단 말이래. 그이 서애대감이 생각하기를 아무리 형이라도 괘씸하단 말이래.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자기가 형보다 못하지도 않거든. 그래서 사무(계속) 불평을 하면서 서애대감은 뒤에 오고 겸암선생은 앞서 가는데, 마침 어떤 촌에 오다가 소나기를 만나서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었어. 오두막에 들어가 보니 웬 노인하고 처자하고 앉아서, 노인은 신을 삼고 처자는 심부름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겸암선생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더니마는 그 심부름하는 처자를 동생 배필로 삼자는 거라. 그래 고마 그집에서도 좋다고 하거든. 이 모습을 보니 서애대감이 성이 많이 났어. 신이나 삼고 있는 하잘 것 없는 노인하고 사돈을 맺을려고 하니 성이 안나겠어. 그래도 형이니까 말도 못하고 시름시름 내려왔어. 그 일이 있고부터는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게 되었어. 서애선생은 화가나서 겸암선생 방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서로 소원하게 지냈다 말이래, 그랬다가 하루는 겸암선생이 서애 대감을 불렀어,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데. 동생 동생, 여기 들어와보래. 그래 서애선생이 마지못해 들어갔단 말이래. 그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오늘이 시동생 혼사날인데 여기 있으면 제수씨하고 올라그랬으니 있어보자. 그래서 방이 있게 되었는데 새벽녘에 쯤 되니, 뜰 담 아래서 쿵! 하는 소리가 나거든. 그래서 문을 턱 열어 보니, 꼬리가 아홉자난 예끼(여우)가, 말하자면 구미호(九尾狐)가 자빠져 있는게라. 조금 있다보니 저번에 보았던 그 심부름하던 처자가 들어오더니만 하는 말이 이만하면 되지요? 그런단 말이래. 갑자기 예끼가 나타나고 처자가 나타나니 서애대감이 놀라서, 뭐로? 하고는 왜 근노(그러노)? 하고 묻는다 말이래. 그러니 겸안선생이 말하기를, 동생 동생,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소가 들룰 때(재혼할 때) 색시로 들어온 것이 그 예끼래, 아버지가 홀려서 그른게래. 그런데 아부지가 들인 색시가 예끼라고 말릴 수는 없잖는가? 그래 있다보니 예끼 새끼가 났는데, 맹 구미호란 말이래. 그러니 그걸 남의 손을 빌려가주고 죽여야 되지. 아부지 혈육을 우리 손으로 죽일 수는 없잖는가? 안 그런가? 부모혈육을 말이래. 나는 그전에 신을 삼는 사람이 보통 사람 아닌 줄 알았다 말이래. 그런데 만약에 재상 집 처자를 색시로 들였으면 예끼 동생인데 전부 죽을 꺼라 말이래 그러거든. 그 소리를 들은 서애 대감이 항복을 했다는 게래.

북후면 옹천리 / 1981 / 강대각 , 남 , 62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五馬隊

공민왕이 도저히 피란을 안 내려오고는 안되서 안동으로 내려왔어. 그래 내려와서 쓴 글씨가 안동군청 간판이래. 그게 공민왕 글씨 친필(親筆)이지. 그때 공민왕은 안동에 주재(駐在)했다가,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어. 이래서 산성(山城) 쌓았는데, 예안 부포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부터 산능선을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어. 그래 그 길이 얼매나 큰지 말 다섯 필이 능선을 타고서 왔다 갔다 할 정도였어. 지금도 흔적이 있지

예안면 인계리 / 1981 / 이기영 , 남 , 58

산신령과 내기 바둑 두어 황금 얻은 퇴계선생

퇴계선생은 바둑도 국수급이래요. 바둑을 아주 잘 뜨는 분이라. 어느 날 금강산 유람을 들어갔는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 어느 젊은 사람이 마상(馬上)에 떡 앉아서 퇴계선생을 보고 말을 아주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드라 그해요. 저 당신 이황선생이지요. 아 그렇다.고 하니. 당신이 나이도 많고 유학자이지만 바둑도 잘 뚠다는데. 하고 반말 비슷하게 하이께네. 퇴계선생이 바둑 잘 뜨지는 못하고, 그냥 외유나 하고 논다.고 답을 했어. 그러니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이 그럼 내하고 바둑 한 번 둡시다. 한단 말이래. 그래 퇴계선생이 마지못해서 그럼 뜨자고. 하니. 젊은 놈이 마상에서 내리더니만 바둑판을 펼치는게라. 퇴계선생이 가만이 보니, 바둑판과 바둑알이 전부 쇠고 금이래. 바둑판을 펼쳐서 바둑을 두려고 하니, 젊은 놈이 하는 말이 어 뭐라도 내기를 하자. 그러거든. 그래 퇴계선생이 어떤 내기를 하면 좋으냐.고 물으니 내가 지면 이 바둑판하고, 이 주먹만한 금덩어리 주께고, 만약에 퇴계선생이 지면 내 요구대로 해달라. 카는 게라. 그래 퇴계선생이 요구가 뭐냐? 고 물으니 당신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서 출세를 못하니, 당신이 이 세상에 없어져야 되겠다. 하는게라. 말하자면 죽일 챔이라. 그라고 젊은 놈이 계속 독촉을 하면서 자신이 있으면 뜨자. 그래 독촉을 하거든. 그래도 점잖은 사람이 안할려고 하니, 젊은 사람인데 물러서도 못하고 할 수 없이 바둑을 뜨게 되었어. 그런데 이 젊은 사람이 아주 바둑을 잘 둬서 마지막에 가니 고마 대마가 죽을 판이라, 한점만 잘못 두면 대마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두려워서 바둑알을 놓지도 못하고 한숨을 쉬고 있는데, 그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이 그 단디 보시고 놓으시소. 내 저 소변보고 오지요. 하면서 일어서서 어디로 가는게라. 퇴계선생이 속이 타가 바둑판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더벅머리 총각이 누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만 손가락으로 바둑판 다음 놓은 자리를 짚어 주고는 누워버리는게라. 그래서 짚어준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 희한한 곳이라. 그게 참 묘수이거든. 그래 가만히 있다가 젊은 사람이 소변을 보고 앉으니, 퇴계선생이 더벅머리 총각이 짚어준 그 자리에 딱 바둑알을 놨어. 그래 바둑을 두고 나니 젊은 사람이 성을 버럭내더니만 더벅머리 총각을 가르키면서 저놈 짓이제? 죽일 놈. 이러면서 바둑판하고 보따리하고 싸가지고 가 버렸어. 내기를 했으니 금덩어리는 내두고 가버리거든. 그 뒤에 더벅머리 총각이 일어나더디만 말 하는게라. 저 젊은 사람은 태백산 신령인데 젊은이로 가장 해서 퇴계선생을 잡으러 왔고, 나는 금강산 산신령인데 퇴계선생이 죽을까바 살릴라고 옆에 누워 있었다.그는 게라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 / 1985 / 정재곤 , 남 , 66

태몽치마와 서애대감

서애대감 엄마가 딸만 많이 낳았어. 하루는 친정에 와서 쉬는데 아들을 많이 놓은 형이 태몽꿈을 꿨다고 하면서 먹을 거는 없는데, 용 두마리가 마구 치마에 담기더라. 그래거든. 이말을 들은 서애대감 엄마가 그 치마를 날 벗어다고. 내 비단치마를 주께. 하고는 형하고 치마를 바꿔 입었어요. 그리고 꿈도 내 가지고 간다. 하고 말하고는 다 떨어진 치마를 입고 집으로 왔는거라. 그러고 치매를 바꿔 입은 그 형은 시댁에 가서 치마를 바꿔 입은 이야기 하니, 시어른이 성을 내면서 다시 친정을 쫓아 보내 버렸어. 이혼을 당한거지. 그리고 하회로 돌아온 서애대감 엄마는 그 후에 태기가 있었는데, 그래서 낳은 것이 서애대감이래.

풍천면 구담리 / 1998 / 김해수 , 여 , 86

봉사 점장이 덕에 개국공신 된 맹사성(孟思誠)

맹사성이는 조선시대때 공신(功臣)인데. 맹사성이 어릴때는 부모도 없고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서울 장안으로 돌아다닌게라. 그때 서울 장안에는 아주 점을 잘치는 봉사가 하나 있었어. 맹사성이 사방으로 댕기다 보니. 봉사집에도 댕기곤 했는데. 봉사가 눈으로 보지는 못 하지면 맹사성이 하는 말씨며, 하는 행동이 아주 이상하거든. 그래 하루는 봉사가 맹사성을 불러서,

"야, 사성아!
예.
니 야야, 올 때도 갈 때도 없는데, 니 고마 우리 집이 있거라.
예, 그래지요, 머.
그래 거기서 몇 해 봉사 심부름도 하고, 점치러 오는 사람 심부름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저녁때 앉아 있다니 봉사가 하는 말이 니, 저기 광화문 밖을 알지?
예, 아니더.
거 가면, 전부 설은 영장을 거 묻잖나?
예, 그렇지요.
니 오늘 저녁에 꼭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그래지요. "

그때는 역질(疫疾)이 많이 돌았는데, 그 역질에 걸려 죽으면 덕에(나뭇가지 사이 따위에 걸쳐 만든 시렁)올려 놔. 덕에 올려놓았다가 한 삼 일 지나면 공동묘지 갖다 묻는데. 어쩌다가 벼슬도 많이 한 집 처년데, 죽어버렸어. 죽으니 보기 싫다고 공동묘지에 묻어라. 이렇게 된게라. 그래서, 그 봉사가 맹사성보고 하는 말이 니 오늘 아문데 가면은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누가 장사를 지내고 있을 거다. 장사를 다 지내고 사람들이 간 뒤에, 그 묘를 파가지고 영장을 업고 온나. 이랬어. 예, 시키는 대로하지요.

그래 공동묘지에 가서 머리를 묘속에 숙이고 있으니, 밤이 이슥해진 후에 한 대여섯이서 묘지로 오더니만 상여에서 관을 들어내서 장사를 지내그던. 그래 그 뒤에 봉사가 시키는 대로 묘를 팠어. 파고 보니 비단에 뚤뚤 말아 싼 영장이 있단 말이래. 그래 그 영장을 들고 오니, 봉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 영장을 안아 품고서 아랫목에 드러누워 있거라.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어. 영장을 탁 안고서 아랫목에 가만있으니 봉사가 하는 말이 영장 가슴에 손을 넣어 봐라. 그래서 또 시키는 대로 손을 넣었다. 그러고 있으니 봉사가 하는 말이, 손을 넣어보니 감각이 어떻노? 하고 물어오는게래. 맹사성이 야, 좀 따스하이더. 그리, 봉사가 하는 말이 그만 하면 됐다. 손을 빼고 조금 더 드러누웠거라 그래 또 영장을 안고 드러누웠어, 얼마 안되어 봉사가 하는 말이 니, 손 한 번 여 봐라.

그래서 또 손을 여 보이께네, 그때는 맥이 뛰어. 그제서야 봉사가 밖에 나가서 물을 끓여가주고 갖다 먹여라.

그래서 맹사성이 물을 끓여서 영장 입에 떠 넣으니, 그제서야 처자가 일어났어, 일어나는 걸 보니. 처자가 나이 한 이십 정도에 용모가 옥골(玉骨)이래. 또 재상 집에서 역질에 걸려 죽었으니, 옷하고 패물을 전부 한테 넣어서 묻었다 말이래.

그래 인제 처녀가 살아 일어나 보니, 죽었는동 살았는동 이게 누구네 집인동 어덴동, 생전에 문밖에도 안 나가던 처자가 보니 이상하그던. 그래 가만 보니, 총각 하나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물도 떠 주고 밥도 해 주고 한단 말이래. 그래 그 처자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총각이 일을 하는데, 자기는 가만히 앉아 얻어 먹을 수만 없그던. 그래 나가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게 되었단 말이래.

그래 하니, 자연스럽게 맹사성하고 낯이 익게 되었어. 그렇게 생활하다가 보니 정이 들었어 그리고 생각해 보니, 총각 때문에 내가 이 집에 왔지 그렇지 않으면 죽었을 거란 말이래.

그래 하루는 보따리 짐을 풀어서 간직하고 있던 패물을 내놓고는 이걸로, 시장에 나가 팔아가지고 오소.

그래 맹사성이 시키는 대로 패물을 가지고 시장에 내다 파는데,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어떤 처자가 하나 온단 말이래. 그래 패물을 보더니만 이리 들고 보고, 저리 들고 보고, 자꾸 들고 보거든. 그러다가 사지는 안하고 그냥 가는 게라.

그 처녀가 누구냐 하면 바로 대감님 비빈(婢)데. 장보러 나왔다가 자기가 모시던 아씨의 패물을 보게 된게라. 그래 집에 와서 상전한테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어.

쇤네(소인네)가 시장에 나갔다가, 오늘 이상한 것을 봤다.
이래그던. 그래 뭔 물건을 봤노? 물으니,
예전에 아씨가 가지고 있던 패물을 내가 봤니더.
그래, 그 니, 그 총각을 아나?
알아요.
아직도 시장에 있나?
있어요.

그래 아직도 패물을 못팔아가 가만 앉아 있는데, 웬 사람들이 오더니만 맹사성을 잡고서 마구 패는게라. 아 이놈, 누가 묘를 뒤집어 팠느냐? 아주 고얀 놈 같으니 남의 묘를 파서 물건을 팔아먹느냐? 하고 패니 어쩔수가 있는가.
그래, 니 이 패물을 어디가 구했노? 이실직고(以實直告) 안 하만 너를 죽일테니, 바른 대로 이야길 해라. 그래 인제 바른 대로 이야기했단 말이래. 그 말을 듣던 안부인이 생각해 보이께네, 그 총각이 아니면 자기 딸은 죽었그던. 그래 총각을 데려다 놓고 총각이 묘를 파서 아이를 살렸지만 몸을 다 베려 놨으니, 이 처자가 다른 데 시집을 갈 수 없다 그런단 말이래. 그리고는 맹사성을 사위로 삼았어. 그 재상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는데, 밑도 끝도 없는 맹사성을 매부로 섬기려니 성도나고 얼매나 밉겠노. 그래 생각하기를 이놈을 망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 삼청동 가면 아주 커다란 집이 하나 있는데, 이 집에는 들어가면 모두 망해가 나오는게라. 그래 그 소문을 듣고 그 집을 몇 푼 주고 사서 맹사성이 보고 들어가 살게 했어. 근데 맹사성이 들어가서는 아무런 재앙도 없이 잘 살거든. 그래 그 처녀가 하는 말이 당신도 이왕 내 알게 됐으니 글을 배우라. 그래서 처녀가 글을 가르쳐서 맹사성이가 개국공신 된 이야기래요

소산동 소산 / 1981 / 김시규 , 남 , 85

우남촌 일화

그래 우남촌이가, 그분이 나들에, 남의 집이 살로 갔그던. 이래가주, 올 임시에, 그르이 글때는 참 일꾼 머식에 그 멋한 집에 있는 참 머식에서는 요만한 아들도 나이 암만 많애도 일군에 예대하는 법이 없어. 고만 우남촌이마 우남촌이고, 아무 것이만 아무 것이랬지, 아문 도령이 도령이고 고마 이래부랬지, 도령 소리도 없었지, 이래 됐는데, 나올 임시에 가만 보이, 이늠의 아도 우남촌이, 어른도 우남촌있다. 그래 그 주인한데, 동리 한 번, 칠월 달로 인제 이래 머식해, 풋구라꼬 초연식에 말이지. 여러 머식이 크게 채래서 인제 나무 밑에 성대하게 머식이 갖다 놓고, 술을 인제 한 잔 이래 서로 노나다가 먹고 흥분이 한창 머식한데, 복판에 서가주고 그 분이 복판에 딱! 서서 "

"모도 내 이 얘기를 쫌 들어보소. 나을님요. 내 이예기 좀 들어보소.
글 멀 근냐꼬? 이 동리 이름이 먼가요?
사들(사월동)에지!
안재 금마, 그만 하면 됐습니다. 놔두라꼬. 옳지! 요놈의 동네 사들에 동네, 예절 절종을 했다메? "

아도 우남촌이, 어른도 우남촌이, 지한테 대고 만날 이러그던. 그르니 칠월 인제까지 농사 다 지이 놓으니, 초연식이 머식하이 인지는 살고 나갈 시기 며칠 안됐그던. 얼마 안 남았그던. 가실만 해조부만 인제, 이래가주 술을 한 잔 먹어 놓고, 옳지! 알았다. 요놈의 데, 예대(禮待) 절종했다.

"그 다음에는 지도 고 안에, 아문 나 많은 노인이 머식이래도 고만 하는대로,
어이! 고.
이 사람. "

이래 그 그래, 초년식에 인제 여러이 있는데, 공포를 그래 해부렀그던. 이르이 갈불 이도 없고, 또 타이를이 없어. 그래가주고, 그차 나와가주고, 사들이 사들이 고놈의 데, 법이 무섭다 그다 질들이기 원 쉽고 머식한 걸.

서후면 저전리 / 1981 / 조차기 , 남 , 63

용동이 일화

이, 아-들은 많지. 그르이 인제 구 또 할마시 되는 분은 그 가산은 넉넉치 못하이 잔소리할 건 사실이라. 이러고 앉아. 그래, 영감님으는 워째 머식해가주고서 아-들은 밥 달라꼬 저렇게 나대고, 저麝구 나대는데, 워엘라고 머식해가주고 당신은, 영감은 술만 자시고 그꾸 머식하느냐꼬? 허허! 이 사람 할마이 걱정 말게. 이 사람아, 걱정이 된고? 그릇 없다 그래, 숫가락 한 짐 여다 놔, 나무 없다 그래, 검불 때, 걱정이 머 있는고? 나무는 무슨 놈의? 허허! 삼검불(삼 찌꺼기)은 검불 아인가? 또 정지 소다 그래, 마당이 마구 정지래. 남의 석포에 이다 가작 달아 놨으이 말이래. 정지 소다 그래 마구 정지, 마당이 정지래.

저전리 모시밭 / 1981 / 조차기 , 남 , 63

자치행정과 054-840-6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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