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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 전설

우리의 안동이야기

자연물전설

농사 잘되라고 비는 고시레

고씨라꼬 아주 유명한 집안이여. 이 집안에 한 양반이 인제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머리만 메고 다니는 거여. 그러니 시체를 짊어지고 다닌 것인데, 왜 그런고 하면 좋은 명당자리를 찾아서 묻는다고 그렇게 다닌겨. 그래 다니다가 들어보니 사람들이 진개명개오야이뜰이라고 거기가 명당자리라고 그라거든 거기가 어디냐 하면, 저 전라도 최고평야야, 진개명개오야이뜰 하는데 바로 거기여, 지금도 우리나라 최고 평야여. 그래 거기를 찾아가서 최고 좋은 명당자리라고 갖다 묻었는데. 묻고 저녁에 떡 잠을 자는데 그 아버지가 나타나서 뭐라 하라 하면은 요놈의 새끼야 그 터는 내 터가 아니라. 한다 이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를 저쪽 산에 갖다 묻으면, 그 자손은 없어도 이 세상이 망할 때까지는, 제사를 잘 얻어먹는다. 이렇게 말하거든, 그러면서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맞다. 그러는 거여. 그래서 다음날 꿈에 말한 그곳에 묘를 썼어. 그래 묘를 쓰고 난 후에 얼마 안 있어, 비가 안 오기 시작한 거여, 가물어서 곡식이 안돼는 거야. 비가 와야지 농사가 되는 건데, 죽을 판이라.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는 대사가 썩 지나가는데, 이 가뭄에는 원인이 있다. 고 하면서 저기가 고씨 묘인데 저걸 잘 위해야 풍년이 들고 욕을 안 먹는다. 이렇게 말하는 거여. 그러니, 당제사 지내듯이 동네사람들이 제사를 거기에 지내게 되었어. 그러다가 차츰 차츰 들에서 일을 하다가도 뭘 먹으면은, 곡식 잘되게 해 달라고 고씨네, 고씨네 하고 부르게 된거여, 그게 고시레야, 그러니까 그게 고씨여,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고시레 하는거지.

도산면 서부리 / 1988 / 보광사 주지스님 , 남 , 74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화상싸움

저전리에서 보면 학가산이 뾰족하게 보여 풍수적으로 화재가 자주난다 그래요. 그래 이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 소나무나, 뽕나무 뿌리를 말려서 단단하게 두드린 후 실로 감아서 세 발 정도 되는 새끼줄을 이어서 만드는데, 새끼줄을 빙빙 돌리면서 싸우지요

가마싸움에 희생된 남선면 원림리 각시당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한쪽은 험한 산이고 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비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단 말이래. 옛날에는 초행길 가마가 물러서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맛꾼들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비켜갈 수가 없어서 양측의 가마꾼들이 힘으로 맞부딪치게 된게라. 인제 가마를 맨 채 가마꾼들은 밀고 당기는 가마싸움이 벌어졌는데. 힘이 약한 쪽의 가마가 차츰 밀리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 그래 고마 가마 속에 타고 있던 색시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 그래가 갈라산 중턱에 이날 죽은 각시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각시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된게라.

남선면 원림리 / 1992 / 최인연 , 남 , 38

왜적을 물리치는 노래 쾌지나 칭칭 나네

안동의 하회마을에 서애대감의 형인 겸암선생이 있었는데 남보기에는 모자래는 듯이 보여도 실제로는 미래를 내다보고 길흉을 점칠 줄 아는 도인이래, 기인이지. 그때 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왜적이 조선을 쳐들어오기 위하여 칼을 갈고 있었는데, 그래가 세상이 온통 어지러워졌어. 그래 한날은 겸암선생이 서애대감을 찾아와서는 사흘 후에 너를 죽이기 위해서 일본서 자객이 찾아올 것이니, 니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서 가등청청 나오네 라는 노래를 부르도록 시켜라. 그래거든.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평소에 겸암선생을 잘 아는 서애선생이 생각하기를 필시 뭔가 연유가 있어서 이러는 갑다. 이래 생각을 해서 마을 아이들을 불러모아서 '가등청정이 나오네'라는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어. 그리고 며칠 후에 참말로 가등청정이 보낸 자객이 하회마을에 왔는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가능청정이 나오네'라고 노래를 부르거든. 그래 그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섬찍한게 도저리 마을을 염탐할 용기가 안나는 게라.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오는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알고 저런 노래를 부르지?' 부쩍 의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첩자가 아이들인데 누가 가르쳐 준 노래냐고 물어보았어. 아이들이 대답하기를 서애대감이 가르쳐주었다고 말하니, 첩자가 서애대감이 참 훌륭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이 조선에 있어서는 일본인데 큰 방해가 될 것 같으니 내가 고만 없애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또 겸암선생이 서애대감을 불러서는 내일 자객이 와서 니하고 바둑을 두자고 할 터이니. 니는 거울 앞에 앉고 자객을 거울 밑에 앉쳐라. 그리고 내가 뒷방에 바둑 놓을 자리를 거울에 비쳐 줄 테니 니는 그냥 거기에 두기만 하면 된다. 이래 말하거든. 조금 있다고 보니 참말로 자객이 와서 서애대감인데 내기 바둑을 두자고 청하거든. 그래서 서애대감이 좋다고 하면서 겸암선생이 시키는 대로 거울 앞에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어. 한 반쯤 바둑을 두었는데 자객이 생각해보이 도저히 안 돼겠그던. 그래 고마 제가 졌습니다. 하고는 음식대접도 안 받고 부랴부랴 달아나 버렸다 그래. 이 일로 인해가 임진왜란 때 우리 안동 땅은 왜군들이 약탈하지 못하고 피해갔다고 그래. 그리고 그때 부른 '가등청정이 나오네'가 변해가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민요로 바뀌어 전해졌다고 그래.

안동시 이천동 / 조석우 , 남 , 78

애틋한 사랑과 신령스러움이 담긴 하회탈

하회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별신당이 있어서, 음력 정월 초이틀날이면 마을제사를 지내거든. 그런데 어떤 해 마을제사를 지내고 동사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만들자 이래 논의가 됐어요. 그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얼마전에 보니 중하고 각시하고 놀아나더라. 하기도 하고 양반이나 선비도 별거 아이더라. 하는 말이 보태져서, 그 사람들 풍자를 하면서 해학스럽게 만들어보자고 논의가 되었어요. 그래서 각시, 양반, 선비, 초랭이, 중, 부네, 영감, 백정, 할매, 주지, 소로 결정을 해놓고 놀이를 했는데, 하다보니 이거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낮바새(얼굴이 드러나)서 못하겠거든. 그래서 또 궁리한 끝에 탈을 만들어 쓰자고 결정을 하거든. 인제 탈을 깎을 사람을 물색했는데, 마침 마을에 허도령이라는 사람이 손재주가 있었어요. 그래서 허도령인데 부탁을 하니 허도령이 자신도 없고 해서 극구 사양을 하더라그래. 그랬다가 어느날 허도령이 잠을 자는데 꿈에 신령이 현몽을 하면서 탈을 만들기를 종용하는게라. 그래 허도령이 깨서 생각해보니 하도 신기해서 생각하기를 내가 탈을 만들어야 되겠다. 결심을 하고서는 탈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잡인들이 들어오면 부정을 타니까. 금줄을 두루고 누구도 근접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놓고, 마을사람들도 허도령이 작심한 줄 알고 부정이 안타도록 단디 단도리를 해서 허도령 작업실 인근에는 얼씬도 안하도록 약조를 했어요. 허도령이 매일 목욕재계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서 탈을 만드는데 열성을 쏟았어. 양반도 만들고, 할매도 만들고 해서 열 두 개의 탈을 거의 다 만들어 가고 있었어요. 석달이 다되가 인제 마지막 이매탈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웃에 허도령을 몹시도 사모하는 처자가 한 명 살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허도령을 볼려고 기다렸지만 석 달이 넘도록 허도령이 보이지 않거든. 그래서 상사병이 날 지경이 되었어요. 그래 허도령 얼굴을 먼데서라도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래. 그래 맨날 정화수를 떠놓고 허도령 작업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밤마다 빌고 있었는데, 석달이 지날 때쯤 되어서, 그날도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있는데 허도령 얼굴이 정화수에 떠 올라와서 깜짝 놀래가 생각하기를 인제서야 탈이 다 만들어 졌는갑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는 달밝은 밤에 허도령 집에 몰래 들어가가 구멍을 내고 허도령을 훔쳐보고 말았는데, 원래 탈은 신성한 거래가 부정을 타면 안돼거든. 그만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허도령이 피를 토하고 죽어버린게라, 처자도 같이 변을 당했지. 그때 허도령이 만들고 있던 탈이 이매탈이었는데, 그래서 이매탈은 턱이 없어.

안동군 / 1984 / 내고장 전통가꾸기

태워서 시작된 놋다리밟기

공민왕이 난을 피해 안동에 왔는데, 강을 건너게 됐거든. 그런데 강에 다리가 없는게라. 그래도 시기가 시기라서 급하니 그냥 강을 건넬라 그러는데. 참 귀한 공주가 맨발로 강을 건네게 할 수 없어서 안동에 있는 부녀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인교를 놓은게라. 허리를 구부리가(구부려서) 공민왕의 공주를 등으로 지나가게 해서 강을 건네 준게라. 그때부터 그것을 기념해서 놋다리밟기를 시작했다 그래.

안동군 / 1984 / 내고향 전통가꾸기

자치행정과 054-840-6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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